프랑스 요리사 이직일기- 3. 첫 이별
또 한 번, 파티셰의 퇴사
내가 요리로 돌아온 후 디저트를 맡았던 파티셰는 항상 힘들어했다. 그녀는 업무량이 너무 많은 것은 물론이고 파볼의 디저트 파트 멸시까지 견뎌내기에는 너무 순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제 키친 갤러리 를 떠나겠다고 사장님께 말했다. 두 달 더 일하고 떠나겠다고 말이다.
두 달은 다음 파티셰를 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끔 직장동료들이 “연호, 다시 디저트로 돌아가야하는거 아냐?”라고 짓궂은 장난을 쳐도 여유롭게 “절대 그럴 일 없어”라고 같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다시 디저트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불공평한 일이었따. 그렇기 때문에 같이 웃을 수 있는 장난이었다.
두 달 후 그녀는 떠났다. 그러나 새 파티셰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파티셰가 공석이 된 첫 날, 사장님은 나를 불러 말했다.
“2주 후면 새 파티셰가 올테니 그 때까지만 한 번 더 부탁한다”라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지난번처럼 기약 없이 “다음 파티셰를 구할 때 까지”가 아니고 ‘2주’라는 구체적인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사장님에게 내 열정을 바칠 준비가 돼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디저트에 돌아가니 실제로 일이 너무나 재밌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파트이지만 마치 바로 어제 디저트를 맡았던 것처럼 디저트 파트 일이 손에 익었다. 그렇게 2주를 열심히, 재밌게 일했다. 새 파티셰가 왔을 때 너무 정신 없지 않도록 창고, 냉장실, 냉동실도 잘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이용 당했다는 배신감
새 파티셰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장님과 대화할 기회가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주방장이던 파볼에게 물어봤다.
“새 파티셰 그래서 다음주에 온대?”
“아니? 새 파티셰 2 주 후에 오는데?”
"아 그래? 오케이”
나는 단순히 내가 잘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아, 2주가 아니라 4주 후에 온다는 거였구나’
그렇게 다시 또 2주를 즐겁게 일했다. 2주도 재밌게 했는데 2주 더 쯤이야 아무 문제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후 파볼에게 또 물었다.
“그러면 이제 다음 월요일엔 새 파티셰 오는거네?”
“아, 근데 새 파티셰 전 직장 그만두고 오면 7월 말 전엔 못 온대”
당시는 아마 5월이었다. 그리고 7월 말 전엔 못 온다는 뜻은 결국 새 파티셰는 9월에 온다는 뜻이었다. 8월은 가게가 한 달 간 문을 닫기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처음엔 2주라고 하더니 점점 길어지는 것인지. 사장님이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싫다고 할테니 2주라고 말한 후에 조금씩 시간을 끄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이 때 깨달았다. 나는 그냥 언제든지 파티셰 땜빵을 해야하는 존재이구나. 다른 직장동료들은 점점 멋진 직책으로 이동할 때 나는 파티셰 땜빵을 하느라 그들을 부러워만 해야하는구나.
실제로 파티셰 예비군이라는 것은 내가 현재 위치에서 더 중요한 직책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당시에 주방장, 부주방장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직책인 고기&생선 파트로 넘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고기&생선 파트에 있는 사람은 구조상 그 파트를 잠깐 비운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장님이 나를 파티셰 예비군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면 나를 절대로 고기&생선에는 넣지 않겠구나’라는 결론이 지어졌다. 즉, 내 커리어는 이제 제자리걸음 할 일만 남은 것이었다.
퇴사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내 열정과 충성을 다 바쳐 일을 했지만 제 키친 갤러리 안에서의 내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매일 일하며 항상 기쁜 마음으로 임해 왔지만, 사실 이제껏 이용당한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짜증이 났다. 작은 스트레스도 나에겐 큰 스트레스가 되었고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이용당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사장님을 존경하고 제 키친 갤러리를 사랑했다. 따라서 사장님에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두고 퇴사 의사를 알렸다. 계약서 상으로는 14일의 예고만 해주면 되지만 나는 사장님이 천천히 좋은 사람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 두 달이나 미리 말씀드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굳이 내가 사장님에게 충성심을 보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사장님은 내가 퇴사를 예고드린 이후부터 인사할 때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시작했고, 나에게는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정말 불공평한 것은 나보다 약간 적은 기간의 퇴사예고를 한 직장동료에게는 아주 상냥하게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퇴사 예정자가 나와 그 친구 뿐이라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저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장님이 나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예외적인 것이었고 그 친구를 제외한 모두에게 사장님은 그런식으로 작별을 준비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2022년 7월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근무를 하고 제키친 갤러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