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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6가지 리더십 재능

셰프 폴

첫 인상은 조승우

현재 직장에서 나의 셰프는 폴(Paul)이다. 사장님 셰프 윌리엄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나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것은 셰프 폴이다. 폴의 첫 인상은 조승우였다. 장난스러운 눈빛에 턱 모양이 배우 조승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폴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나서는 더이상 조승우가 겹쳐보이지 않는다.

폴과 함께 일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무섭고 신경질적인 직장상사로만 느껴졌다. 나의 업무가 폴의 성에 차지 않으면 폴은 종종 비아냥대고는 했는데 그럴때면 폴이 미워서 ‘아직 젊어서 리더로서의 역할은 미숙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디저트를 맡게되어 매일 폴의 바로 옆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리더로서 폴의 진면목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폴과 같은 자리에 서서 요리사들을 지휘하는 날이 오면, 폴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본다.

폴이 어떤 면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까?

  1. 상호 존중이 아니다. 상호 존경이다.

  2. 일단 믿고 맡겨야한다는 것을 안다.

  3. 직원들의 장점을 기어코 찾아낸다.

  4. 직원들의 열정을 절대 폄하하지 않고 높게 사준다.

  5. 천사 역할과 악마 역할 사이의 전환을 해야할 때를 안다.

  6.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못 하는 것을 못 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상호 존중이 아니다. 상호 존경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 많은 곳에서 ‘상호존중’의 중요성에 대해 듣게된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상호존중이 중요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한편 주방을 비롯해 의사결정 구조가 수직적인 곳에서는 상호존중이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수직적인 사회에서는 하위계급일수록 위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을 실행하기만 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수직적인 구조의 조직에서 ‘상호존중’을 제대로 실현하는 리더는 정말 훌륭한 리더일 것이다. 자신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주는 훌륭한 리더 말이다.

그런데 셰프 폴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상호존경’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자신의 부하직원을 존경한다. 이 직원은 이러한 장점을, 저 직원의 저러한 장점을 가진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자신의 리더에게 존경 받는 부하직원의 기분을 상상해보라. 당연히 그 부하직원은 리더를 향한 존경심이 배가 되고, 또한 리더가 존경하는 자신의 장점을 더욱더 다듬어나갈 의지가 샘솟을 것이다.

수직구조에서 부하를 존경할 줄 아는 셰프 폴. 정말 본받고 싶은 리더로서의 재능이다.

일단 믿고 맡겨야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우리 일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을 때, 우리의 부사수 혹은 부하직원에게 일을 맡기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부사수가 그 일을 하게되면 내가 했을 때보다 완성도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심하면 아예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해야할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일을 다시하게 되면 그만큼 재료값이 배로 늘어나는 주방일의 특성상 이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자신이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자신의 부사수의 일까지 해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리더십의 관점에서 이러한 습관은 좋지 못하다. 그 부사수는 만년 무능한 부사수로 남을 것이고, 사수는 자신이 자원하여 일을 더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사수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쌓여간다.

그런데 그렇다고 고급레스토랑에서 못 미더운 부사수에게 예쁜 플레이팅, 중요한 재료썰기 등을 맡길 수 있을까? 1분 1초가 소중한 그 상황에, 적게는 10만원, 때에 따라 50만원 이상 지불한 고객이 자신의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그 상황에 부사수에게 쉽게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셰프 폴은 맡긴다. 부하직원이 내놓은 결과물이 자신이 원하는 100%가 아닐 것을 알고도 맡긴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맡긴다. 그래야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첫 몇 시간 혹은 첫 며칠은 부사수의 결과물을 보면서 매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on envoie !(서빙해주세요!라고 서버에게 하는 말)” 라고 외친다. 100%가 아닌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해야하는 스트레스를 자신이 감내하면서도 일단 계속 그 일을 맡기고 그 음식을 손님에게 보낸다(물론 일정기준이하의 결과물은 사나운 목소리로 소리지르며 담당 직원에게 돌려보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에는 그 부하직원은 셰프 폴이 원하는 100% 또는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120%라는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된다.

어떤 일을 처음 맡겼을 때 그 직원이 잘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그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그 일을 시키지 않고 우리가 직접 해버린다. 120%의 결과물을 냈을 지도 모를 그 부사수는 그렇게 만년 무능한 직원으로 남게되고 이는 팀 전체에 큰 손실이다.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도 신입, 부하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그 능력도 셰프 폴의 큰 능력으로 본다.

직원들의 장점을 기어코 찾아낸다

프랑스에서는 직원을 한 번 고용하면 그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따라서 실수로 기준미달의 직원을 고용했을 경우엔 리더들이 그 직원에게 모질게 대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우리의 사장님은 인간관계를 신성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꼭 노동법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 번 고용한 사람은 끝까지 데리고 가고 싶어한다.

이러한 상황에 셰프 폴이 진화를 한 것일까 아니면 셰프 폴이 애초에 갖고 있던 리더십 재능일까? 폴은 모든 직원에게서 장점을 발견하고, 검은 진흙 속에서 빛나는 사금 한 조각을 찾아내듯이 그 직원의 가진, 그 표현되지 않은 열정을 꿰뚫어본다. 그렇게 어떻게든 자신의 팀원을 다함께 끌고간다. 이러한 모습은 팀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내가 혹 실수를 하더라도 나의 리더는 나의 진실된 열정을 바라봐주겠구나’ 하는 안정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정말 배우도 싶은 리더십 능력이다.

직원들의 열정을 절대 폄하하지 않고 높게 사준다

공부 대신 요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휴학을 했다. 그러고는 나를 써주는 주방들에서 닥치는대로 일했다. 그 때의 열정은 어쩌면 지금의 열정보다도 더 불타고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주방 선배들의 시선은 얼마나 차갑던지 그 열정의 불꽃을 꺼버리기에 충분했다. 당시 요리 프로들이 흥행하면서 스타셰프들이 탄생하던 시기였기에 ‘티비 프로 보고 쉽게 생각해서 요리하러 왔구나’라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다. (참고로 그 당시에 나는 요리프로를 일절 보지 않았다) 또한 업무 분담 방식의 부조리함 등 주방 문화의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나서 “‘연호가 요리를 계속하고 싶어하기는 하는 걸까?’생각이 들었어”라는 말도 들었다.

25살 정도로 어렸던 나에게 이런식으로 나의 열정을 폄하하려는 말들은 실제로 나의 의지를 갉아먹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나는 요리하기엔 너무 나약한 사람인가보다’라는 패배주의적 생각이 자리잡게 만들었다.

셰프 폴은 어떨까.

어느 직장이나 그렇겠지만 우리 레스토랑에도 사고뭉치들과 일해야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엄하게 지적을 받았는 데도 불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그런 직장동료들 말이다. 셰프 폴이 천사는 아니다. 예민한 직업의 우두머리를 맡았으니 예민한 정도도 우두머리 급이다. 따라서 뭔가 잘못 굴러가게 하는 직원이 있으면 정말 무섭게 혼을 낸다. 하지만 그 실력을 가지고 나무라는 경우는 있어도 절대로 '열정’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내 휴학시절 일하던 곳이었다면 “너는 열정이 부족해서 그것도 못하는구나!”라고 나무랐을 것에 대해 “너는 왜 이걸 이렇게 하라니까 다르게 해!”라고, 그리고 정말 심한 경우 “너 일 진짜 못 한다! 똑바로 해!” 라는 식이다. 폴도 성인군자는 아니기에 비아냥거림이 섞인 말들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로 열정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부하직원의 열정을 깎아내리는 것이 듣는 입장에서 얼마나 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인지 잘 느껴본 입장에서 이 또한 정말 훌륭한 능력이라고 본다.

천사 역할과 악마 역할 사이의 전환을 해야할 때를 안다

우리 주방의 우두머리는 두 명이다. 한 명은 항상 우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셰프 폴. 다른 한 명은 사장님인 동시에 스타셰프이고 또한 우리의 우두머리인 셰프 윌리엄이다. 셰프 윌리엄은 내 아버지와 같은 나이로, 요리 실력은 여전하시지만 이제는 주방 안의 사소한 일은 크게 관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가 주방 안의 잘못된 업무 처리 방식을 발견하고 크게 노하시는 경우가 있다. 평소에 정말 인자한 분이시기에 윌리엄 셰프가 화를 낼 때 주방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한 편, 평소 폴은 예민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있고, 직원들에게 쏘아붙이는 말을 하기 일쑤다. 하지만 윌리엄 셰프가 주방 분위기를 얼음장처럼 만드는 그 때, 폴은 그 누구보다 인자해진다. 윌리엄 셰프가 보지 않고 있을 때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건 이런식으로 얼른 처리해. 저건 저렇게 하면 돼". 이런 리더십으로 긴장해버린 직원들은 다시 긴장을 풀고 제대로 업무를 해나가게 된다.

사실 정말 당연한 것이다. 누구 한 명이 엄격하면 다른 한 명은 자상한 역할을 해서 일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것. 하지만 폴과 같이 그것을 기가 막히게 실행해내는 것은 정말 존경스럽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못 하는 것을 못 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윗사람이 모든 면에서 아랫사람보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랫사람은 아는 것을 모르는 윗사람은 멋이 없는 것 같다. 지시를 받는 사람이 아는 것을 지시를 해야할 사람이 모른다고?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멋이 없을까?

폴과 함께 일을 하며 느낀 것은 "윗사람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자신이 아랫사람보다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멋있구나"이다.

위의 '상호존경'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부하직원을 향한 존경이 없이는 모르는 점에 대한 인정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하도 존경받을만한 훌륭한 요리사라는 것이 바탕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 나는 못한다, 네가 더 잘 안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폴의 이러한 자세는 폴 개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모른는 것을 시원하게 인정하기에 새로운 것을 더 적극적으로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리더를 가진 팀은 어떻게 될까? 창의적인 업무 처리방식을 자연스럽게 제시할 수 있게된다.

"이 업무 이렇게 할 수도 있어요"라고 한 직원이 제안했을 때

"그래? 난 모르는 방법인데? 한 번 보여줘봐" 하는 대화가 오가는 팀이 된다.

어떠한 업무를 경직되고 일률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팀과 비교했을 때 폴의 팀이 얼마나 빠르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낼 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