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퓨레- 1. 프랑스와 감자 퓨레
감자퓨레. 프랑스인들의 진심이 담긴 요리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든지 “할머니가 해주시던 감자 퓨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감자 퓨레는 프랑스 요리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하면서도 가장 진지한 요리가 아닐까 싶다.
주재료부터가 프랑스에서 정말 진지하게 다뤄지는 재료 두 가지인 감자와 버터이기도 하며 프랑스인이라면 대부분 “할머니가 해주시던 감자퓨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성역이기도 하다.
프랑스와 감자의 만남
프랑스가 감자퓨레에 얼마나 진심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각각의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먼저 감자와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감자는 남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로 16세기에 감자가 처음 유럽에 수입됐을 당시엔 프랑스인을 비롯한 유럽인에게 감자란 생소하기 짝이 없는 농작물이었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비슷했겠지만 일단 프랑스에서는 감자를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가축의 사료로 사용했다. 18세기, 이제는 유럽에서 감자를 먹는 것이 꽤나 보편화되고 있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감자를 먹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감자의 재배가 불법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감자가 나병을 전염시킨다는 오해가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Parmentier s’empresse d'offrir les fleurs de pommes de terre qu’il vient de cueillir dans le champ des Sablons à Louis XVI et Marie-Antoinette alors à la promenade à Versailles (gravure extraite du Petit Journal, mars 1901).
파르멍티에, 사블롱 밭(champ des Sablons)에서 금방 딴 감자 꽃을 루이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에게 베르사유 산책중에 선물하다. (1901년 3월 프티 주르날(Petit Journal)에 실린 판화)
한 편 앙투안 파르멍티에(Antoine Parmentier, 1737-1813)라는 프랑스 군의관이 있었다. 그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으로 포로 생활하게 되었고 이 때 감자를 먹어보고 감자의 영양학상 이점을 몸소 느낀다. 감자는 재배가 쉽고 보관도 용이하며 영양도 풍부했다. 감자의 이러한 이점 덕에 유럽 대륙은 기근의 종식에 가까워지고 있는 반면에 프랑스는 감자 재배가 불법이라니 파르멍티에는 군의관으로서, 영양학자로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포로 생활의 특수성 덕에 감자가 너무나 맛있게 느껴졌던 것일까 아니면 영양학자로서의 사명감이었을까? 파르멍티에는 이후 감자를 식재료로써 보급하기 위해 수 많은 노력을 한다. 감자로 밀을 대신해 빵을 굽는 법을 연구해 보급하고 국가 유명인사나 왕족, 귀족에게 감자를 이용한 고급요리를 선보인다.
파르멍티에의 수 많은 노력에도 국민은 감자를 식재료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번뜩이는 묘책으로 대중이 감자를 좋아하게 만드는데 성공해낸다. 묘책은 바로 이러했다. 파리 근교의 왕실 농지에 감자를 심고 근위병들이 지키게 했다. 수확철이 되자 파르멍티에는 이 밭을 낮에만 지키게 하고 밤에는 방치하도록 했다. 시민들의 마음 속에는 ‘무슨 농작물이길래 군인까지 동원해서 밭을 지켜?’라는 궁금증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을테고, 야밤을 틈타 시민들이 서리한 금싸라기 같은 농작물은 다름 아닌 감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감자는 ‘돼지밥’이 아닌 ‘왕이 귀하게 여기는 식재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이고 실제로는 감자는 왕실 농지가 아닌 군 농지에 심어져있었다. 또한 파르멍티에는 “올해 기후가 좋지 않아 감자가 맛이 없을테고 이런 감자를 시민들이 맛보면 감자에 대한 첫 인상이 더더욱 안 좋아질테니 주야로 밭을 잘 감시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미루어보아 군 농지에서 대규모 경작을 해 시민들에게 요리로 선보일 계획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많은 프랑스인들은 위의 전설을 사실로 믿고 있다.)
감자와 유럽 대중. 왼쪽으로부터 밀레의 <감자를 심는 사람들Les Planteurs de pommes de terre> 유화, 1862 보스턴 미술관, 밀레의 <감자의 수확La Récolte des pommes de terre> 유화, 1855경,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Les Mangeurs de pommes de terre> 유화, 1885, 반 고흐 미술관
프랑스의 감자 사랑
프랑스를 정말이지 감자를 사랑한다. 아무리 동네에 있는 마트에 가도 감자 품종을 세 가지 이상은 찾아볼 수 있다. 보통은 분질 품종 한 가지, 점질 품종 한 가지, 그리고 고급 품종 한 가지를 판매한다. 작은 마트만 해도 이 정도인 것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큰 마트의 감자 진열대 앞에 서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감자를 만난 느낌이다.
사실 프랑스의 감자 소비량은 북유럽이나 동유럽 국가에 뒤쳐진다. 하지만 과연 조리법으로도 뒤쳐질까? 감자에 대한 사랑을 단순한 ‘소비량’이 아닌 ‘식재료로써 감자에 대한 탐구’로 평가한다면 단연코 프랑스가 세계 1등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수 많은 요리사들을 배출해왔고 지금도 계속 배출 중인 명문 학교인 페랑디(Ecole Ferrandi) 학교에서 출판한 요리 교재에서는 감자와 프랑스 요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Notre patrimoine culinaire est d’ailleur le reflet du champ des possibles du fameux tubercule puisque nombreuses sont les recettes à base de pomme de terre”
어쩌면 우리 프랑스 요리 문화 유산이라는 것은 감자의 가능 범위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많은 조리법들이 감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자의 가능 범위의 반영”을 좀 더 풀어서 번역해보자면 “감자로 끄집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곧 프랑스 요리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프랑스 요리 위인 중 한 명으로 오늘날의 요리사들까지도 참고로 삼는 <요리 안내서 Le Guide culinaire, 1903, Flammarion>를 집필한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Auguste Escoffier)는 파르멍티에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일까, <요리 안내서>에 무려 59가지의 감자 조리법을 정리해두었다.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1847-1935)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식당에서도 거의 1년 내내 감자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겨울엔 풍부하고 따뜻한 맛을 주는 퓨레, 봄가을엔 감자의 산뜻한 향을 강조한 감자구이, 여름엔 남프랑스풍의 매시 포테이토를 사용하는 식이다.
버터와 프랑스
감자퓨레의 주재료인 감자, 그리고 한편엔 두 번째 주재료, 버터가 있다. 버터와 프랑스는 어떠한 인연이 있을까? 프랑스에서 버터는 ‘생필품’이다. 오늘날 버터는 생필품으로 인정되어 ‘낮은 부가가치세’(5.5%)가 적용되고 있다. 마가린을 비롯한 식물성유지에는 ‘일반 부가가치세’(20%)가 적용되는 것과 대조된다. 한편 버터가 이미 200년 이상 프랑스에서 생필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마가린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 (1808-1873)는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여론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동자층과 빈곤층을 위해 여러가지 정책들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버터와 비슷한데 가격은 저렴하고 보관이 용이하며 변질우려가 적은 지방성 제품에 대한 공모전”을 주최한 것이다. 이는 오래간 배에서 생활해야하는 해군, 그리고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계층이 버터를 영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나폴레옹 3세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이 공모전을 통해 탄생하게된 마가린은 현대의 마가린과 완전히 다른 제품이긴 하다. 하지만 마가린 탄생 역사를 통해 프랑스에서 버터가 오래간 생필품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버터를 생필품으로써 생각한 나라답게, 프랑스는 국내 버터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1810년부터 꾸준히 법령을 제정하고 개정하고 보완해왔다. 현재 버터에 관한 프랑스 법령이 유럽연합 법령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EU 국가에서는 ‘버터’나 ‘크림’이라는 단어가 100% 버터이거나 100% 크림으로 이루어진 상품에만 사용될 수 있으며 ‘땅콩버터’나 ‘카카오버터’와 같이 오래간 ‘버터’의 명칭이 붙은 제품은 예외적으로 ‘버터’라는 단어가 사용될 수 있다.
프랑스의 진심, 감자와 버터, 그리고 그 둘의 만남
감자퓨레를 설명하기 위해 버터와 감자가 프랑스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여겨지는 식재료인지 알아보았다. 이렇게나 진지하게 다뤄지는 두 재료가 제대로 만난 프랑스 요리가 바로 감자 퓨레인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요리에서 감자퓨레는 쉽게 접할 수 있다. 가족 만찬에 빠지지 않는 요리이며 현대적인 식당들에서도 고기나 생선에 곁들여 자주 등장한다.
한국으로 치면 김치와 밥의 만남, 즉 김치볶음밥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랑스의 김치볶음밥, 감자 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