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퓨레- 2. 연스키 레시피
Purée de Pomme de Terre
감자 퓨레
감자퓨레가 프랑스에서 얼마나 대단한 위치를 가지는 지는 알겠다. 그러면 프랑스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만들어 먹는데? 매시포테이토랑 비슷한 거 아닌가?
사실이다. 만드는 방법은 매시 포테이토와 완전히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요리 이름이 말해주듯이 매시 포테이토는 부순 감자의 질감이고 감자 퓨레는 퓨레의 식감, 즉 되직한 소스의 질감이다. 또한 퓨레는 “ ‘프랑스식’ 매시 포테이토 ”인 만큼 버터의 비율이 훨신 높다.
감자 퓨레를 만드는 단계를 간략하게 나눠보면 이렇게 된다.
감자를 푹 삶는다
삶은 감자를 체에 내려 곱게 부순다
곱게 부서진 감자에 우유, 버터, 소금을 넣어 질감과 맛을 맞춘다.
자 이제 곧바로 만들러 가보자.
0. 재료의 선택
먼저 재료를 소개한다.
(분질 품종의) 감자 - 300g (삶기 전 무게)
차가운 버터 - 60g (삶기 전 감자 무게의 25%)
뜨거운 우유 - 원하는 질감에 따라 달라짐
“분질 품종의 감자”란 무엇일까?
프랑스에서는 감자를 네 가지로 나눈다.
분질 품종 (chair farineuse 가루 속살)
부드러운 품종 (chair fondante 녹아내리는 속살)
점질 품종 (chair ferme 단단한 속살)
햇 감자 (pomme de terre primeure 그 해의 첫 감자)
하지만 일반적으로 쉽게 나눌 때는 1번과 3 번, 즉 분질과 점질 품종으로만 나눈다. 2번, 부드러운 품종은 1번과 3번의 중간이라고 보면 되겠고 4번의 햇감자(primeure,프리뫼르)는 하나의 품종이라기보다는 생육방식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일찍 심어서 덜 성숙한 감자일 때 수확한다).
분질 감자는 전분이 많고 수분은 적은 감자로 익으면 부서지는듯한 식감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감자튀김이나 부드러운 감자 퓨레에 많이 쓰인다. 그 반대편 점질 감자는 전분은 적고 수분은 많은 감자로 익은 후에도 원래의 형태를 잘 유지하여 삶아서 쪼개먹거나 오븐, 후라이팬에 구워먹는 감자로 많이 쓰인다.
앞서 말했듯이 감자 퓨레에는 분질 품종의 감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푹 익었을 때 스스로 잘 부서지기 때문에 좋은 식감의 퓨레를 보장해주고 만드는 것도 고생이 덜하기 때문이다. 한편, 라트(Ratte)라는 품종의 점질 감자는 그 맛이 훌륭하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조금 더 고생스럽더라도 퓨레용 감자로 선택 받기도 한다.
한국의 수미 감자는 점질 품종에 더 가까운데 한식 조리법인 탕과 조림에 알맞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것이다. 정말 정석의 감자 퓨레를 한국에서 해보고 싶다면 분질 품종을 따로 찾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분질 감자는 대표적으로 ‘두백’이나 ‘남작’이 있다.
버터의 중요성
앞의 글(감자퓨레 1편)에서 설명했듯이 감자퓨레에 쓰이는 버터는 ‘부재료’가 아니라 ‘주재료’이다. 버터 특유의 향긋함과 풍부함을 즐기는 음식이기 때문에 좋은 버터를 선택하는 것은 좋은 감자 퓨레를 만들 때 굉장히 중요하다. 한 마디로 감자 퓨레는 버터 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가공버터’는 감자퓨레의 재료로써는 피해주는 것이 좋다. ‘가공버터’는 일반적으로 버터에 식물성 유지를 섞은 것인데, 식물성 유지가 섞인 것만으로도 감자 퓨레의 맛을 ‘풍부함’에서 ‘느끼함’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 웬만하면 프랑스산 버터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맛있겠으나 구하기가 힘들거나 가격이 부담된다면 국산 혹은 뉴질랜드산 100% 버터를 사용하자(100% 우유로 만든 버터만이 포장 뒷면의 “상품의 유형”란에 ‘버터’라고 표시할 수 있다. 식물성 유지가 섞인 것은 ‘가공버터’라고 표기한다).
우유
감자퓨레의 재료와 조리법은 참 단순하다. 단순하기 때문에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단순한 요리는 평범함을 허용치 않는다”고 요리학교 학생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단순한 요리는 구성요소가 단순한만큼 투입된 재료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신경을 써야한다는 의미이다. 우유는 감자와 버터만큼 존재감이 큰 재료는 아니지만 좋은 우유를 쓰면 더 좋은 퓨레를 만들 수 있다. 나도 유튜브에서는 일반 우유를 썼지만 최고의 감자퓨레를 위해서는 최고의 우유를 사용해야한다.
좀 더 풍부한 맛을 위해 우유 대신 생크림을 사용할 수 있다.
1. 감자를 푹 삶는다
감자를 곱게 부수기 위해서는 먼저 감자를 푹 삶아야한다. 덜 삶아진 감자를 체에 내리면 나중에 퓨레 안에서 작은 조각이 씹힐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감자를 껍질째로 통째로 삶는다. 감자의 껍질이 감자의 살을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그리고 수분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껍질을 깐다
하지만 감자의 껍질을 까서 삶을 때의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껍질을 까서 삶았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로, 껍질을 까도 삶는 물에 녹아내리는 맛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다
둘째로, 껍질을 미리 깐 감자는 삶아지자마자 물만 털어내고 바로 체에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간편하다.
셋째로, 감자는 보통 저장고에 보관되다가 유통되기 때문에 얼룩이나 상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껍질을 먼저 까면 이러한 부분을 일찌감치 제거할 수 있다.
감자를 일정하게 썬다
그렇다 감자의 껍질을 까고 게다가 썰기까지 하는 것은 “껍질째로 통째로 삶는다”던 정통방식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껍질을 벗겨서 삶는 물에 녹는 맛도 있는데, 썰기까지하면 감자의 표면적이 넓어지고 빠져나가는 감자의 맛이 더더욱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감자를 써는 것은 깐 감자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깐 감자를 통째로 삶는다면 감자의 심부까지 푹 익히는 동안 바깥부분은 분명 지나치게 익어서 부서져내릴 것이다. 이는 단순히 맛이 빠져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감자의 살 자체를 잃는 것이 돼버린다. 감자 살이 부서지는 크나큰 손실을 막기 위해서 감자를 적당히 썰어 빠른 시간내에 익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썬다면 빠져나가는 맛이 늘어나니 약 3cm 두께로 써는 것을 추천한다.
감자를 삶는다
이렇게 껍질을 까고 3cm 두께로 썬 감자는 찬물에서부터 끓어올려 삶아준다. 뜨거운 물에 삶는 것보다 오히려 빨리 익는다고 한다. 또한 1%의 소금물(가령 1L의 물에 10g의 소금)에 삶으면 빠져나가는 맛이 최소화된다고 하니 소금도 넣어주자.
처음에는 강불에 올려 일단 끓는점까지 올려준 후 불을 줄여 보글보글 살살 끓여주면 된다. 너무 세게 끓으면 감자들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부서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살살 끓이는 것이 좋다. 유튜브 영상용 퓨레는 감자 삶는 물이 끓어오른 시점으로부터 17분 후에 감자가 다 익었다. 다 익은 감자는 칼로 찔렀을 때 아무런 저항 없이 칼이 들어가야한다.
감자가 삶아지는 동안
감자 무게(삶기 전 무게)의 25%에 해당하는 버터를 작은 깍두기(대략 1cm)로 미리 썰어 냉장고에 넣어두자. 작게 썬 버터는 마무리 단계에 필요하다.
2. 삶은 감자를 체에 내려 곱게 부순다
이렇게 잘 삶아진 감자를 성근 체에 걸러 물을 털어내준다. 그리고 이제 이 감자를 고운 체에 내려 부술 것인데, 이 단계가 부드럽고 녹아내리는 질감의 감자퓨레를 위해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부드럽고 녹아내리는 질감을 위해 두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한다.
감자는 지금부터 완성될 때까지 계속 뜨거운 상태로 유지해준다.
감자를 체에 내릴 때 감자가 비벼지지 않도록 해준다.
감자를 뜨겁게 유지한다
감자가 식으면 완성품에 덩어리가 남을 수 있다. 특히 체에 내리는 시점에 식은 감자를 내리면 이러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따라서 물을 털어낸 감자는 되도록이면 사기 재질의 볼에 담고 뚜껑을 덮어둔다. 그리고 여기서 한 조각씩 꺼내고 꺼낼 때마다 다시 뚜껑을 덮어준다. 감자를 따뜻하게 유지해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방법이어도 좋다.
감자를 비비지 않는다
감자가 비벼지면 끈적끈적한 물질이 흘러나온다. 이런 물질이 많이 흘러나온 퓨레는 식감이 질겅질겅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끈적끈적한 물질이 최소한으로 나오도록 체에 내려줘야한다. 이를 위해 감자를 하나씩 체 위에 올린 후, 넓은 면적을 수직으로 찍는 듯한 동작으로 체에 내려주는 것이 좋다.
3. 곱게 부서진 감자에 우유, 버터, 소금을 넣어 질감과 맛을 맞춘다.
이제 고운 체에 내려 부서진 감자의 질감과 맛을 맞춰주자.
부서진 감자를 살짝 말려준다
먼저 체에 내린 감자를 냄비에 옮겨담는다. 그리고 중약불에 냄비를 올려 감자를 살살 말려준다. 채소를 볶는 동작으로 말려주면 된다.
우리는 감자를 잘라서 삶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자가 조금 더 젖어있다. 따라서 살짝 말려주는 단계를 잊지 말고 해주면 훨신 더 맛있어진다. 대신 감자가 색깔이 나거나 딱딱하게 구워지면 안 된다. 이런 불 조절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면 말리는 단계는 생략해도 된다.
뜨거운 우유를 조금 넣어 질감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이제는 우유와 버터로 맛과 질감을 잡아줄 때이다. 우유는 전자렌지로든 옆에 다른 냄비로든 미리 데워 놓자.
순서는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먼저 우유로 감자의 농도를 약간 풀어준 후 버터를 조금씩 조금씩 모두 녹여 넣고, 우유로 다시 질감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유로 농도를 잡아버리면 버터가 추가됐을 때 너무 흐르는 농도가 될 위험이 있고 처음부터 버터를 녹여 넣으면 감자가 아직 되직한 상태이기 때문에 동작이 편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버터를 녹여 넣을 때는 빠르게 저어주는 게 좋은데 감자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빠르게 저어 녹여 넣는 것이 쉽지 않다.
미리 썰어둔 버터를 조금씩 조금씩 모두 녹여넣는다.
약간의 뜨거운 우유로 감자의 농도가 풀렸다면 이제 차가운 버터를 조금씩 녹여넣는다. 농도가 잘 풀린 이후에는 휘퍼를 이용해 힘차게 저어주는 것이 좋다. 차가운 버터를 조금씩 녹여넣으라는 것과 힘차게 저어주라는 것은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바로 기름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한꺼번에 많은 기름(버터)이 들어가거나 제대로 저어주지 않으면 기름이 제대로 섞여들어가지 못하고 시각적으로 덜 맛있어보일 수 있다.
우유로 농도를 마무리하면서 소금간도 맞춰준다
이제 마무리로 다시 뜨거운 우유를 조금씩 추가하면서 원하는 농도를 맞춰준다. 고기에 곁들이는 플레이팅을 할 때는 어느정도 되직한 것이 좋고 한 그릇에 따로 담아 수프와 비슷하게 먹을 때는 조금 흐르는 농도가 좋다. 이 때 소금도 넣어주면서 간을 맞춘다.
보관
하루만에 다 먹지 못할 것 같다면 마무리 단계에 퓨레를 한 번 끓여주는 것이 좋다. 유제품과 탄수화물 비율이 높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먼저 불을 중강-강불에 올리고 바닥이 타지 않도록 휘퍼로 계속 저어준다. 휘퍼의 움직임을 잠깐 멈췄을 때 마그마가 끓듯 공기방울이 올라오면 다시 휘퍼를 힘차게 휘저으면서 3초 정도 더 가열해준다. 그리고 나서 보관용기에 담는다.
보관용기에 담은 후에는 보관용기에 맞는 크기의 유산지를 잘라서 퓨레 표면에 붙여주면 좋다. 떡이 딱딱해지는 것처럼 퓨레도 겉면이 딱딱해질 수 있는데 유산지를 붙여두면 이런 것이 방지된다.
완전히 식을 때까지는 뚜껑을 닫지 말자.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세균들도 우리와 같이 따뜻한 온도를 좋아한다. 그런데 뚜껑을 닫으면 일종의 온실효과가 생겨 식는 속도가 느려지고 음식물이 따뜻한 온도 구간에 오랫동안 머무르게된다. 그러면 세균이 조금이라도 더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뚜껑을 연 채로 빠르게 식혀 용기를 만져봤을 때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식으면 뚜껑을 덮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