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요리사 이직 일기- 1. 제 키친 갤러리와의 만남

2023년 6월 13일, 결심했다. 이 식당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이미 떠난 적이 있었긴 했지만, 이번엔 정말로 정말로, 영영 떠나기로.

2023년 6월 13일이 되어 이 식당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누구에게는 재밌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간접 경험으로, 나에게는 미래의 사장으로서 직원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록이 될 것이다.

제 키친 갤러리(Ze Kitchen Galerie)와의 첫 만남

프랑스 리옹 교환학생 시절의 기숙사 방. 당시 돈을 아끼기 위해 매일 요리를 해먹으며 요리에 대한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제 키친 갤러리와의 첫 만남은 내가 요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기도 전의 일이다. 때는 2016년, 프랑스 제 2의 도시인 리옹(Lyon)에서 불문학도로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기이다. 그 해 봄, 고모네 가족이 파리에 놀러왔다. 당시 우리 친가족은 아직 파인 다이닝이란 개념에 거의 문외한이던 반면, 고모네 가족은 이미 파인 다이닝 경험을 시작한 상태였고, 심지어 프랑스 파리에 가장 좋아하는 식당들도 몇 개 점 찍어 놓은 상태였다.

고모가 밥을 사주겠다며 고모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으로 나를 불렀다. 예상했다시피 바로 제 키친 갤러리이다. 고모는 이 식당이 미슐랭 가이드 별이 하나 있으며 별 두 개, 세 개보다 이 식당처럼 하나만 있는 곳들이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별 한 개를 가진 식당들 중에 이 곳이 가장 맛있다고 고모는 말했다. 당시 나는 파인 다이닝스러운 상큼한 소스, 알록달록한 기름, 샛초록색의 퓨레 등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이미 요리에 관심을 가진 상태였지만 파인다이닝의 세계는 너무나 새로웠다. 생소했기도 했고 오래전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생선 요리가 이렇게 가볍고 부드럽고 맛있을 수 있구나’, ‘와사비와 화이트초콜렛을 조합해 디저트를 만들다니 역시 프랑스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2년이 지나 다시 프랑스 파리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불문학이 아닌 요리 유학생으로 돌아왔고, 운이 좋게도 유학 생활 초반에 고모네가 또다시 파리에 놀러왔다 (고모네는 미국에 살기에 프랑스에 접근성이 좋다). 이번에도 우리는 제 키친 갤러리에 가서 저녁을 먹었고, 이번에는 제 키친 갤러리의 훌륭한 재료, 맛, 플레이팅을 더 강렬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요리를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디테일들을 느낀 것이다. 이 때 생각했다. ‘고모, 고모부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 식당에서 일하면 정말 좋겠다, 심지어 아시아와 프렌치의 퓨전이라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잖아!’

그렇게 요리 학교를 마칠 때 나는 당연하게도 제 키친 갤러리에 인턴 지원서를 넣었다. 뽑힐 지 말 지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나에 대해 잘 말해준 덕인지 쉽게 인턴으로 채용되었다. 인턴으로 들어가 일 한 지 첫 날, 당시 총괄셰프였던 폴(Paul)은 이미 나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당시엔 몰랐지만 프랑스 ‘인턴’들은 주방 경험이 아예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기에 나처럼 다른 식당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돋보인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운이 따라줬기에 이튿날에 바로 차가운 전채요리를 맡게 되었다. 운이 안 좋으면 인턴 기간 내내 웰컴 푸드(아뮤즈 부쉬)만 하다가 떠나기도 하는데 나는 참 운이 좋았다. 하나의 제대로된 직무를 맡는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인 대신에 큰 스트레스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해냈나보다. 그 무서운 셰프 폴은 차가운 전채요리 때문에 나에게 화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 만들던 차가운 전채 요리. 상큼한 소스에 생선회를 버무려 예쁘게 담아내는 음식이다.

당시 특이한 점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차가운 전채요리 담당은 자신의 코스를 다 보내고 나면 잽싸게 디저트 파트로 옮겨가 디저트를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제과 과정도 이수했기에 디저트 셰프의 지시들을 곧잘 이해했고 따라서 재빠르게 전채요리를 마치고 디저트를 도와주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인턴 시절 전채요리를 얼른 마치고 디저트를 도와주는 모습

그러다가 얼마되지 않아 디저트 셰프가 건강문제로 일을 그만두었다. 그 다음에 온 디저트 셰프는 일이 힘들다고 또 갑자기 그만두었다. 그렇게 두 디저트 셰프가 연달아 갑작스럽게 그만둔 다음 주 월요일, 셰프 폴은 아직 인턴이었던 나에게 디저트 셰프의 직무를 맡겼다.

디저트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그 날 출근해 해야할 일을 미리 정리하곤 했다.

인턴으로서 디저트 셰프의 직무를 맡게되다니 나에게는 큰 영광이었다. 다른 인턴들은 흔히 인턴들이 하는 직무(차가운 전채요리, 허브 준비, 배달 온 재료 정리 등)를 해나가는데 나는 직접 하루 계획을 세우고, 재료도 직접 주문하는 정직원 급의 직무를 맡게된 것이다. 이 때는 내가 내 동기들 (아주 같은 날에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하게 시작한 인턴과 실습생들) 중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저트 셰프를 맡게된 것이 내 커리어에 저주처럼 다가올 줄은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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